동해병기법안이 이제 주하원에서 다뤄질 차례였다. 교육 소위가 열리기로 한 날은 1월29일. 9명의 위원 중 5명만 찬성하면 됐다. 법안 상정 의원들과 한인들은 무난한 교육소위 통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팀 휴고 하원의원(공화)이 소위 소집 며칠을 앞두고 피터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한인들은 뭐하고 있는 거요? 지금 맥컬리프 주지사가 노골적으로 스탭을 보내 교육소위 위원들을 설득하고 있어요.”
이 때부터 한인사회도 더 이상 쉬쉬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캠페인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주미대사관에서도 외교 분쟁 등을 걱정하기 보다는 간접적으로라도 적극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호영 대사가 이 때쯤 맥컬리프 주지사를 만났는데 동해병기를 대화의 주제로 꺼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지사는 안 대사의 내방 목적을 모를 리 없었다.
주지사의 로비 탓인지 캠페인 관계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사단은 결국 소위 당일 벌어졌다. 법안 공동 상정자인 스캇 링검펠터 의원이 표결 전에 자리를 뜨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과는 4대4. 그가 찬성표를 던졌다면 끝나는 일이었다. 반대 의원들은 법안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듯 했다. 특히 벨 소위원장은 “위원장인 내가 반대를 했으니 부결됐다”며 은근슬쩍 깔아뭉개려는 눈치였다.
짐 르문연 의원(공화)이 정색을 하고 따졌다. “공동 상정자가 자리를 비웠지만 당연히 그는 찬성표로 봐야 한다”며 다시 표결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르문연이 강하게 나오니까 벨 위원장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다음날 재표결 하기로 결의됐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 5대4. 공든탑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무너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때부터 피터 김 회장은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리고 의원들을 한인들이 적극 압박해야 할 때가 왔다는 판단에 워싱턴한인연합회, 워싱턴통합노인회 등과 협력해 한인 동원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맥컬리프의 서명으로 모든 것이 끝난 지금까지 의문은 안 풀리고 있다. 법안 통과에 앞장서겠다고 호언했던 링검펠터는 김 회장의 VMI 10년 선배였다. 동두천에서 두 번이나 근무했었고 아내는 한국에서 영어교사를 하기도 했다. 아들도 VMI를 졸업했다. 군에서 배우는 정신 가운데는 ‘정직성’도 포함된다. VMI 출신임을 늘 자랑해왔던 김회장은 주지사 로비 때문에 주변 동료 의원들과 한인사회에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고는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후에 링검펠터는 “다른 중요한 위원회 표결이 있어서 급하게 나가야 했다”고 변명했지만 10여분을 더 기다리기 어려웠을까? 또 자신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지금도 그 일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계속>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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